세 살 때 '숲' 경험 여든까지 간다 (hankookilbo.com)
가끔 운동을 위해서 시민천문대 등산로를 따라서 올라가곤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답답한 시민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유명 산악지역을 등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여름 철이라 벌레나 거미줄이 달라 붙어서 산책을 방해하지만 사람들은 이 곳을 선택했다. 뜨거운 해빛을 피하면서 걷고 싶거나 산뜻한 공기를 마시기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테고 이러한 선택을 하기위한 전제 조건으로는 당연히 '숲' 이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빌딩과 아파트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서는 시기가 존재 했기에 결국 사람은 '숲'을 찾아 시간을 들여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몰리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기존에 가던 등산로에 사람이 많아 보인다면 이러한 요인이 적용된게 아닐까 싶다.
숲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어린시절에서 '숲'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 금산을 거쳐서 할머니집으로 갈 수 있는 버스가 하루에 2대인 아주 외진 곳이었고, 집 몇 채를 제외하면 전부 숲이었다. TV도 없어서 항상 숲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혼자서도 씩씩하게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이라 현재 내 머리에는 호박벌에 쏘인 좋지 못한 기억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아직 맨손으로 잠자리나 매미를 잡을 수 있는건 그 '숲'에서 무엇인지 모를 행동들이 지대한 영향을 줬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다. 할머니집에서 2~3주 정도 머무르다가 다시 도시로 올 때면, 난 '숲'에서 하던 습성을 못 버리고 도시에 그나마 남아 있는 자연으로 떠나곤 했다. 결국 숲은 계속해서 날 부르게 되고,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 형성에 자연은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자연이 주는 이로움은 말로 표현하면 입 아프다. 당장만 해도 '숲'에서만 할 수 있는 산림치유라는 정신건강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상당히 늘었다. '숲'을 알아갈수록 산림청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져리게 느끼고 이 칼럼을 읽고서도 '숲'을 하나의 학문으로 묶어서 볼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개인 방역이라 하더라도 나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실천해야 효과가 있듯 '숲'에 대한 관심도 많은 사람이 알게 돼서 더 많은 '숲'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